중증장애인 떠나는 IL센터, 혼란 속 개악안 발의돼
서비스 전달 기능만 강조하면 ‘작은 복지관’ 될 것
IL센터만의 독자적 역할 강화하는 법안 필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법은 장애인권리보장법

2000년대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자립생활 이념을 전파하고 자립생활운동을 실천하며,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 아래 IL센터)가 설립됐다. 초기 IL센터는 장애인 당사자 조직으로 운영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가들의 활동비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중증장애인들의 직접적인 활동은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 왔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회적 장애와 물리적 장애, 장애인에 대한 지독한 편견으로 인한 어려움과 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장애인 당사자의 활동은 당사자의 역량 강화와 함께 IL센터를 성장시켜 왔다.

하지만 자립생활운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운동진영은 ‘IL센터는 자립생활이념을 전파하는 운동조직이냐, 자립생활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 기관이냐’라는 논쟁과 함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아래 한자연) 두 곳으로 나뉘어졌다. IL센터에서 ‘운동’과 ‘서비스’를 양분하여 우선순위를 논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처럼 어리석은 논쟁이었다.

IL센터의 존재 이유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통한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변화를 끌어내는 것에 있다. 장애인 당사자를 단순한 ‘서비스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장애인의 주체적인 활동과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생활을 포함한 모든 활동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난 6월 19일 국회의사당역 지하에서 열린 장애인복지법 개악 저지 결의대회. 장애인 활동가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지난 6월 19일 국회의사당역 지하에서 열린 장애인복지법 개악 저지 결의대회. 장애인 활동가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IL센터를 ‘서비스 전달기관’으로? ‘작은 복지관’이 되고 싶은가

현재 IL센터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자립생활이념과 운동을 이야기하지만 자립생활에 대한 행보와 생각은 현격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IL센터 두 진영 중 한 곳인 한자협은 필자가 13년을 활동한 단체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여전히 장애인시설수용 정책, 재활 패러다임 정책으로 일관하며 수용시설에 굳건히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한자협에 소속된 각 지역의 IL센터들은 척박한 장애인복지정책 환경 안에서도 자립생활운동, 진보적 사회운동과 연대를 통해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시설 중심의 정책을 자립생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자립생활운동의 철학이기도 하다. 자립생활운동은 장애를 개인적 불행의 문제가 아닌 사회·환경적 문제라고 바라보는 인식 전환을 통해 기존 시설 수용 중심의 장애인 복지체계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이는 서비스 주체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과거 복지서비스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전달체계는 이제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중심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 이처럼 IL센터는 태생적으로 자립생활운동과 함께 자립생활지원사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IL센터의 역할은 장애인 당사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여 자립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장애인 당사자의 사회참여를 강화해 마침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모든 운동적 기능이 사라진 채 IL센터가 서비스 전달 기능으로만 남아 IL센터에 찾아오는 장애인과 서비스 대상자로서의 관계만 맺는다면, 물적·인적 자원 등 예산 걱정 없이 운영하며 서비스를 지원하는 장애인복지관과 차별성을 가질 수 없다.

지역의 장애인복지관은 규모에서도, 지원인력 수에서도 IL센터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증장애인들이 규모도 적고 지원인력도 적은 IL센터를 찾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이미 짜인 판에서 주인공이 되기보다 내가 함께 짠 판에서 조연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동등한 시민이 아닌 서비스 대상자로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이기도 하다. IL센터는 중증장애인들이 함께 숨 쉬고 활동가로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IL센터가 고유 목적성을 잃고 복지관과의 차별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IL센터는 ‘일 못하는 작은 복지관’으로 전락하여 중증장애인들은 더 이상 IL센터를 찾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4월 21일 임경미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권리예산보장을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했다. 그의 이마에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라는 머리끈이 매여 있다. 사진 강혜민지난해 4월 21일 임경미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권리예산보장을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했다. 그의 이마에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라는 머리끈이 매여 있다. 사진 강혜민

- 우리에게 필요한 법은 장애인권리보장법

이렇듯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에서 완전한 자립생활을 하고 지역사회에서 주체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IL센터는 장애인 당사자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자립생활운동을 기반으로 한 조직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전국의 모든 IL센터가 자립생활이념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가?

현재 IL센터는 역할과 조직 운영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딪치는 장애인 역할의 한계성, 비장애인 활동가와 장애인 활동가의 역할과 위치성에서 오는 갈등과 부딪침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자립생활운동 기반의 IL센터가 어느 순간부터 사업이 중요해지면서 지자체의 평가, 관리·감독을 중심에 두고 속도를 내고 있다. 장애인의 속도를 기다리지 못하는 IL센터의 문제를 조직이 방관하는 순간, 중증장애인은 스스로 IL센터를 떠나게 된다.

올해 초, 이러한 문제를 가속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월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IL센터를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복지시설로 포함한다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IL센터의 정체성을 둘러싼 오래된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IL센터를 서비스 전달기관으로 바라보는 한자연은 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개정안 통과를 주장해 왔다. 반면, 한자협은 IL센터를 자립생활운동의 진지로 바라보고, IL센터의 차별성을 인정해 독자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안에 적극 반대해 왔다.

현재 법안은 지난달 26일 열린 법사위에서 논의 끝에 법사위 제2소위원회에 회부됐다. 제2소위에 회부되면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작아지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법은 IL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로 포함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악안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법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과 IL센터의 위상을 승격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안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장애인권리보장법이다. 이 두 법안은 지난 2021년 11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의 이념을 충실히 담은 두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되길 촉구한다.

* 필자 소개

임경미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