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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시설과 탈시설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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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서은경 조회1,689회 작성일 11-10-1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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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인화학교 50년전 학생 암매장 폭로(종합) 전직 교사 "숨진 아이 무등산 기슭에 파 묻었다" 연합뉴스 | 장아름 | 입력 2011.10.17 15:38 | 수정 2011.10.17 19:06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광주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광주 인화학교 에서 50여 년 전 학생을 학대해 숨지게 한 후 암매장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17일 오후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와 인화학교 동문 150여 명은 광주시청 앞에서 인화학교 법인인 '우석'의 완전 폐쇄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폭로했다. 농아로서 인화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던 김영일(71)씨는 "어린 남자아이가 숨져 가마니에 싸여 있는 것을 봤고 아이를 묻으러 가 내가 직접 땅을 팠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1964년 10월께 고아였던 남자아이(7세 추정)를 교감이 오랫동안 굶기고 때려 숨지게 했다. 아이가 숨지자 가마니에 싸 나와 교감, 다른 교사 1명이 함께 당시 광주 동구 학동에서 7km 정도 떨어진 무등산 기슭에 묻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6개월 후에는 다른 여자아이(6세 추정)에게 오랫동안 방에 가두고 밥을 거의 주지 않아 아이가 벽지를 뜯어 먹기도 했다"며 "아이를 보육하던 할머니가 아이를 떨어 뜨려 숨지게 했고 역시 암매장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교감이 '너희는 바보라 밥이 필요없다'며 아이들을 굶겨왔다"며 "여자아이 사망 후 내가 직접 경찰에 신고했지만 시신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고 직후 교감과 그 형인 학교장이 나를 교내에 가두고 5일동안 때렸다"며 "경찰과 학교에 계속 피해사실 확인을 주장했으나 다들 쉬쉬해 1968년께 학교를 떠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교장과 교감이 두려워 함께 아이의 시신을 매장했지만 평생을 후회 속에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아이들을 굶기고 구타했던 교감의 사진과 그가 투쟁했던 사실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보여주는 한편 "아이들이 숨진 사실을 아는 1,2회 졸업생들이 있다"며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뒷받침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씨 외에도 많은 졸업생이 나와 수십 년 동안 있었던 인권 유린 을 폭로했다. 인화학교 졸업생인 광주농아인협회 강복원 회장은 "1975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인화학교 이사장의 셋째 아들이 재학 중인 청각장애 여학생 2명의 옷을 벗기고 누드화를 그렸다"며 "그 셋째 아들은 현재 광주의 한 일반학교에서 미술교사로 버젓이 근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은 이들이 남아 계속 장애학생들을 학대해 온 것"이라며 "지난 2004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번에 확실하게 처벌해 그 굴레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와 졸업생들은 이날 시청 앞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화학교 앞으로 자리를 옮겨 법인 폐쇄를 요구했다. 또 대책위의 김용목 목사, 김영일 전 인화학교 교사, 강복원 광주농아인협회 회장, 인화학교 졸업생 이용보 목사와 수화통역사 등 5명의 대표단을 구성해 인화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법인폐쇄를 촉구하고 학생들의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