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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더 가난해져야만 밖에서 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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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사무국 조회1,402회 작성일 11-04-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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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 때부터 28년간 시설에서 거주한 송하일 씨
        가족 수입은 없지만 사는 집 때문에 수급자에서 제외

        2011.03.15 00:00 입력 | 2011.03.15 17: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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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 때 시설에 입소해 28년간 생활하다가 올해 1월 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송하일 씨.

        “시설에 있을 때에는 수급권자로 인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오면 더는 수급자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저를 책임져야 한다고 하던데, 어머니는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있을 뿐, 아프셔서 일을 하지 못해요. 얼마 전에는 눈 수술도 받으셨고요.”

        서울에 있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28년 동안 살다가 지난 1월 중순 자립생활을 위해 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 반디불 체험홈에 입주한 송하일 씨(뇌병변장애 1급, 37세). 송 씨는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시설 밖으로 나오기 전에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곳으로 나오기 전, 어머니가 주민센터에 가서 내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는지 확인을 했는데 ‘재산이 있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오셨어요. 전에도 제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반대하셨는데, 그다음부터는 더욱 반대하셨죠. 저도 그때까지는 밖에 나가면 당연히 수급자가 되는 줄만 알고 있었죠.”

        전에도 비슷한 반대를 경험했던 송 씨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장애인생활시설 내에 있는 특수학교에서 공부한 송 씨는 1999년에 수능 시험을 치러 대구대와 나사렛대에 합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당시 송 씨는 ‘지방에서 누가 너를 보조하겠느냐?’라는 시설과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입학을 포기했다. 그 뒤로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송 씨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드디어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올 때 ‘진짜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주거복지사업에서 나오는 지원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이게 계속 나오는 게 아니니까 불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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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중순 열린 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 개소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송하일 씨(오른쪽).

        송 씨는 9살이던 1983년 1월 교사였던 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신 뒤 곧바로 장애인시설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송 씨는 자신이 28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처음 가서 일주일 동안은 밥을 먹지 않았어요. 그 뒤에는 형들의 요구에 시달렸어요. 아버지가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셔서 늘 책을 보았는데, 그럼 형들이 와서는 자신들의 숙제를 시켰죠. 그럼 ‘내가 왜 해야 하느냐?’라고 대들다가 맞기도 하고… 숙제를 다 하면 형들이 껌 하나 던져주고…. 그렇게 살았어요.”

        송 씨는 10살 때 미국으로 입양을 가기로 하고 절차까지 밟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린 일도 있었다.

        “그때는 다시는 가족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차마 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국가는 가족과 동떨어져 생활하는 시설에서 살 때는 지원을 해주다가, 가족이 있는 지역사회로 나오면 그때부터는 가족에 책임이 있으니 더는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해요. 가족이 책임질 수 있다면 제가 시설에 갔을까요?"

        송 씨는 "어머니가 집을 팔아야만, 지금보다 더 가난해져야만, 제가 밖에서 살 자격이 있는 것인가?”라며 분노한다.

        시설에 사는 동안 송 씨는 직접 자신이 기획해 바자회와 시화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기에 지역사회가 낯설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이미 나는 자립을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송 씨는 시설 밖으로 나오고서야 자립생활의 의미를 선명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의사가 무리하게 허리를 쓰지 말라고 했지만, 허리가 아파도 제가 할 일은 제가 해야 해요. 이곳은 이렇게 몸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죠. 그래도 일상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내가 계획하고 결정해서 한다는 게 전에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을 줘요.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건, 제가 계속 시설에 있었다면 알 수 없었던 것이죠.”

        지역사회로 나온 송 씨는 시설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고민하고 있었다. 장애인이 사는 마을을 만들고, 자신처럼 수급자가 되지 못하거나 노숙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고, 드라마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꿈 위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활동지원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3대 법안 제·개정을 위해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출처:비마이너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